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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가 成家 - 청재당화학천설 靑在堂畫學淺說
    개자원화보 芥子園畵譜/본문읽기 2022. 2. 1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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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芥子园画传.初集.5卷.王概等编.清康熙年间彩色套印本_页面

     

     

    원문

    自唐宋荊關董巨以異代齊名成四大家而至李唐劉松年馬遠夏珪爲南渡四大家趙孟頫吳鎭黃公望王蒙爲元四大家高彦敬倪元鎭方方壺雖屬逸品亦卓然成家所謂諸大家者不必分門立戶而門戶自在如李唐則遠法思訓公望則近守董源彦敬則一洗宋體元鎭則首冠元人各自千秋赤幟難拔不知諸家肖子近日屬誰

     

    독해

    당에서 송까지 형호 관동, 동원 거연은, 시대는 다르지만 유명을 같이해서, 네 명의 대가가 되었고, 이후 이당, 유송년, 마원, 하규는 남쪽으로 건너가서 사대가가 되었다. 조맹부오진황공망왕몽은 원의 사대가가 되었고, 고언경예원진방방호는 비록 일품에 속하지만, 역시 탁월하니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 소위 모든 대가들이, 문호를 나누고 세울 필요는 없지만, 문호는 자연스럽게 세워졌다. 이당이 멀리 이사훈을 본받은 것과 같이, 황공망은 가까이 동원을 배웠고, 언경은 송체를 일제히 씻어버리고, 원진은 원대 사람의 으뜸이 되니, 각자 오랜 적치(열열한 기치)가 어지러이 흩어져, 모든 문벌의 초자(후계자)를 알지 못하니, 최근의 무리는 무엇인가!

     


     

    【풀이

    成家
    성가

    自唐宋荊關董巨,以異代齊名,成四大家,後而至李唐劉松年馬遠夏珪,爲南渡四大家。
    자당송형관동거,이이대제명,성사대가,후이지이당,유송년,마원,하규,위남도사대가。
    일가를 이루다.

    당에서 송까지 형호 관동, 동원 거연은, 시대는 다르지만 유명을 같이해서, 네 명의 대가가 되었고, 이후 이당, 유송년, 마원, 하규에 이르러 남으로 건너가 네 명의 대가가 되었다.

     

    * 成家 : 학문이나 기술이 뛰어나 일가를 이룸.

    * 荊關董巨 형호荊浩, 관동關同, 동원董源, 거연巨然. 오대(五代) 예술의 성과를 대표하는 네 사람.

    五代梁, 형호荊浩, 「광려도匡廬圖」, 비단에 수묵, 185.8x106.8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 五代梁, 관동關仝, 「관산행려도關山行旅圖」, 비단에 채색, 4.4x56.8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 五代南唐, 동원董源, 「동천산당 洞天山堂」, 비단에 채색, 183.2x121.2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五代南唐, 거연巨然, 「추산문도도秋山問道圖」, 비단에 담채, 156.2x77.2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 李唐 (이당, 1066-1150) : 송의 화원화가, 자는 희고(晞古). 산수, 인물, 소 그림에 능했고 이사훈에 견줄만하다고 전한다. 금의 침략으로 북송을 떠나 항주로 갔으며, 산세와 기후가 다른 북송과 남송을 아울러 산수화 교량 역할을 했다.

    [1]  北宋, 이당 李唐, 만학송풍도 萬壑松風圖, 비단에 채색, 188.7x139.8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 [2] 南宋, 이당李唐, 강산소경도권 江山小景圖卷, 비단에 채색, 49.7x186.7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 劉松年 (유송년, 1155?~1128) 남송 화원화가, 전당(錢塘) 사람. 장돈례(張敦禮)에게 그림을 배웠고, 인물과 산수, 누각에 능했다.

    [1]  宋, 유송년 劉松年, 계정객화도 溪亭客話圖, 비단에 채색, 119.8x58.5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 [2] 宋, 유송년 劉松年, 강향청하도 江鄉清夏圖卷, 비단에 채색, 31.6x503.5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 [3]宋, 유송년 劉松年, 나한도 羅漢圖, 비단에 채색, 117.4x56.1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 馬遠 (마원, 12c후반 ~ 13c초반) : 남송 하중 사람 (河中, 지금의 산시 성), 자는 흠산(欽山). 산수, 화조 인물에 능함. 화면의 주제를 한쪽으로 몰아 배치하는 구도법을 잘 써서 마일각(馬一角)이라 불린다. 남송 광종(光宗) 영종(寧宗) 대에 화원의 대조가 되었다. 

    * 夏珪 (하규, 12c후반 ~ 13c초반) :  하언지를 말함. 남송 전당 사람 (錢塘, 지금의 저장성), 자는 우옥(禹玉). 산수에 능함. 그림의 주제를 한쪽 변으로 몰아 배치하는 것을 즐겨 하반변(夏半邊)이라 불렸다. 남송 영종과 이종(理宗) 대에 화원의 대조가 되었다. 

    [좌] 宋, 마원 馬遠, 설탄쌍로도 雪灘雙鷺 圖 , 비단에 담채,  59x37.6, 대만국립고궁박물원/ [우] 宋, 하규 夏珪, 진적권 真蹟卷 부분, 비단에 담채, 34.6x498.2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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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趙孟頫,吳鎭,黃公望,王蒙,爲元四大家,高彦敬,倪元鎭,方方壺,雖屬逸品,亦卓然成家。
    조맹부,오진,황공망,왕몽,위원사대가,고언경,예원진,방방호,수속일품,역탁연성가。
    조맹부,오진,황공망,왕몽은 원의 사대가가 되었고, 고언경,예원진,방방호는 비록 일품에 속하지만, 역시 탁월하니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

     

    * 元四大家 : 일반적으로 원말 사대가는 명대에 황공망, 오진, 예찬, 왕몽의 이름을 높여 황오예왕(黃吳倪王)이라 불렀다. 여기서는 예찬 대신 조맹부를 언급하고 있다. 조맹부는 당송대 회화의 장점을 망라하여 원대 화단을 이끈 서화가로 평가받는다.

    * 趙孟頫 (조맹부, 1254~1322) : 자는 자앙(子昂), 호는 송설(松雪), 송설도인(松雪道人), 별호(別號)는 구파(鷗波), 수정궁도인(水精宮道人) 등. 저장성 오흥(吳興, 지금의 저장성 호주) 사람. 송왕조의 종실이었으나 원 황실의 관직을 받아 내적인 갈등과 번민이 있었다. 문학,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시(詩), 서(書), 화(畵), 인(印)에 모두 능함. 그림 제작에 서예를 끌어들이고 고의(古意)를 중시했다. 

    元, 조맹부, 작화추색도 鵲華秋色圖, 종이에 수묵담채, 28.4x93.2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 吳鎭 (오진, 1280~1354) : 의 자는 중규(仲圭), 호는 매화도인(梅花道人), 매도인(梅道人), 매사미(梅沙彌) 등. 지금의 저장성 가흥(嘉興) 사람으로 젊은 시절 유교, 불교, 도교의 경전을 공부하고, 시문 서화를 즐겨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남송 이후 몽골족이 지배하는 정치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없는 처지를 받아들이고 태호(太湖)의 물가에 은거하는 삶을 선택했다.

    [좌] 元, 吳鎮, 蘆灘釣艇圖 卷 부분, 종이에 수묵, 33.7×346.7cm, 메트로폴리탄미술관 / [우] 元, 吳鎮, 漁父圖, 종이에 수묵, 27x36.1cm, 프리어미술관

     

    * 黃公望 (황공망, 1269-1354) : 자(字)는 자구(子久), 호는 대치도인(大癡道人), 상숙(常熟) 사람. 조맹부를 만나 50이 넘어 그림을 배웠고, 상숙의 우산, 저장성의 부춘산 일대의 풍경을 많이 그렸다. 79세에 그린 <부춘산거도권 富春山居圖卷>은 중국 산수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元(1350), 황공망, 부춘산거도 富春山居圖, 종이에 수묵, 33x636.9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 王蒙 (왕몽, 1308~1385) 자는 숙명(叔明), 호는 황학산초(黃鶴山樵), 향광거사(香光居士). 저장성 오흥 사람. 조맹부의 외손자. 원말 각지의 농민기의로 관리와 대지주가 살육되는 난세에 관직을 버리고 황학산(黃鶴山)에 은거했다. 입산 중에도 많은 이들과 교류했으며 난이 평정된 이후에 산을 내려와 다시 관리가 되었다. 이후로도 입산과 하산을 반복하며 입신과 실리를 번민하던 왕몽에게 예찬은 벼슬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말한다. 예찬은 그의 재능을 아껴 진지하게 은거할 것을 여러 번 권했지만, 왕몽은 결국 정치 외곽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옥중에서 사망한다.

    [좌] 元, 왕몽, 단산영해도丹山瀛海图 종이에 수묵,  28.5x80cm, 상해박물관/ [우] 元, 왕몽, 청변은거도 青卞隱居圖, 종이에 수묵, 141x42.2cm, 상해박물관

     

    * 彦敬 (고언경, 1306~1374)  : 고극공(高克恭)을 말함. 호가 언경(彦敬)이다. 습윤한 먹번짐으로 구름 낀 산을 그렸던 송대의 미불 부자의 필묵(筆墨)은 산수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그들의 화풍은 원대에 이르러 많은 대가를 배출했고, 고극공은 그중에서도 일가를 이룬 인물이다.

    元, 고극공, 춘운효애도 春雲曉靄圖, 종이에 수묵담채, 138.1x58.5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 元, 고극공, 운횡수령도 雲橫秀嶺圖, 비단에 수묵담채, 182.3x106.7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 元, 고극공, 춘산욕우도 春山欲雨圖, 비단에 수묵담채, 107x100cm, 상해박물관

     

    * 倪元鎭 (예원진, 1306~1374)  : 예찬(倪瓚)을 말함. 자는 원진(元鎭), 현영(玄瑛) 이고, 호는 운림(雲林), 운림자(雲林子), 운림생(雲林生) 등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형의 보살핌으로 부유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형이 죽고 각지에 농민기의가 일어나자 48세부터 전답을 정리하고 가족들과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원말 사대가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최소한의 붓질로 간결한 그림을 그렸다.

    우후공림도雨後空林圖, 종이에 수묵, 63.5x37.6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 유간한송도 幽涧寒松图, 종이에 수묵, 59.7x50.4cm, 북경 고궁박물원 / 추정가수도秋亭嘉树图, 종이에 수묵, 59.7x50.4cm, 북경 고궁박물원

     

    * 方方壺(방방호, 1306~1374) : 방종의(方從義)를 말함. 방호(方壺)는 아호이다. 천하를 유랑하며 선도(仙道)를 수행했다. 세상일을 싫어하고 그림을 좋아했다. 본인의 마음과 기질에 따라 호방하고 역동적인 그림이 특징이다. 연경에서 황공망, 오진 등과 교류했다. 

    무이방도도 武夷放棹图, 종이에 수묵, 74.4x27.8cm, 북경고궁박물원 / 신악가림도神嶽瓊林圖, 종이에 수묵담채, 120.3x55.7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 고고정도 高高亭圖, 종이에 수묵, 62.1x27.9cm, 대만국립고궁박물원

     


    所謂諸大家者,不必分門立戶,而門戶自在
    소위제대가자,불필분문입호,이문호자재
    소위 모든 대가들은, 문호를 나누고 세울 필요는 없지만, 문호는 자연스럽게 세워졌다.

     

    * 立戶 [설 립, 집 호] 하나의 집안을 이룸. 세대로 등록하여 호를 만듦.


    如李唐則遠法思訓,公望則近守董源,彦敬則一洗宋體,元鎭則首冠元人,
    여이당즉원법사훈,공망즉근수동원,언경즉일세송체,원진즉수관원인,
    이당이 멀리 이사훈을 본받은 것과 같이, 황공망은 가까이 동원을 배웠고, 언경은 송체를 일제히 씻어버리고, 원진은 원대 사람의 으뜸이 되니,

     


     

    各自千秋赤幟難拔,不知諸家肖子,近日屬誰。
    각자천추적치난발,부지제가초자,근일속수。
    각자 오랜 적치가(열열한 기치가) 어지러이 흩어져, 모든 문벌의 초자(후계자)를 알지 못하니, 요사이 초자는 누구인가?\

     

    * 千秋 (일천 천, 가을 추) : 오랜 세월, 천년이라는 긴 세월

    * 赤幟 (적치) : 붉은 깃발

    * 肖子 (닮을 초, 아들 자) : 조상을 욕되게 하지 않는 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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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도서】

     

    「介子園畵譜全集」,대만문화도서공사,1979

    이원섭, 홍석창 역, 完譯介子園畵」,능성출판사,1997

    장언원 외 지음, 김기주 역, 「중국화론선집」, 미술문화, 2007

    이림찬, 장인용 역, 「중국미술사」, 다비치, 2017

     

    【사진출처】

    gmzm.org/gudaizihua/jieziyuan/index.asp?page=27

     

    GMZM.ORG | 光明之门高清原版古籍在线阅读 古代字画图册古籍在线图书馆 古籍欣赏

     

    gmzm.org

    painting.npm.gov.tw/SearchP.aspx

     

    書畫典藏資料檢索系統

     

    painting.npm.gov.tw

    https://theme.npm.edu.tw/opendata/DigitImageSets.aspx?sNo=04015185 

     

    元趙孟頫鵲華秋色 卷 < 精選圖像下載 < 故宮Open Data專區

     

    theme.npm.edu.tw

    https://www.shanghaimuseum.net/mu/frontend/pg/m/article/id/CI00000845

     

    上海博物馆

    王蒙(1308-1385年),字叔明,号香光居士、黄鹤山樵,吴兴(今浙江湖州)人,赵孟頫外孙。工诗文书画,尤其擅画山水,其山水画风格对明清的山水画创作具有深远影响。在绘画史上与黄公望

    www.shanghaimuse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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