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변 能變 - 청재당화학천설 靑在堂畫學淺說개자원화보 芥子園畵譜/본문읽기 2022. 3. 14. 20:31728x90
【원문】 能變
人物自顧陸展鄭,以至僧繇道元一變也。山水則大小李一變也。荊關董巨又一變也。李成范寬一變也。劉李馬夏又一變也。大痴黃鶴又一變也。鹿柴氏曰趙子昂居元代,而猶守宋規,沈啓南本明人,而儼然元畫。唐王洽若預知有米氏父子,而潑墨之關鑰先開,王摩詰若逆料有𤣩蒙,而渲澹之衣缽早具。或創於前,或守於後。或前人恐後人之不善變,而先自變焉,或後人更恐後人之不能善守前人,而堅自守焉。然變者有膽,不變者亦有識。【독해】 능변(시대에 따라 화풍이 변하는 것.)
인물은 고개지, 육탐미, 전자건, 정법사로부터, 장승요, 오도원에 이르러 일변했다. 산수는 대이(이사훈), 소이(이소도)에서 일변했고, 형관동거에서 다시 일변했으며, 이성과 범관이 일변했고, 유이마하가 다시 일변했고, 다시 대치도인(황공망)과 황학산초(왕몽)가 일변했다. 녹시씨가 말하기를 조자앙(조맹부)은 원대에 살면서도 송의 법규를 지켰고, 심계남은 본디 명나라 사람이면서도 원의 그림과 같았다. 혹자는 앞에서 (변화를)시작하고, 혹자는 뒤에서 (그 변화를) 지킨다. 어떤 전대 사람은 후대 사람이 잘 변화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미리 스스로 변화하고, 어떤 후대 사람은(자신의) 후대인이 능히 전대 사람의 변화를 잘 지키지 못할 것을 더욱 두려워하여, 굳게 스스로 지킨다. 그러니 변화한 자는 담대하고, 변화하지 못한 자(지킨 자)는 또한 식견이 있다고 하겠다.
728x90
【풀이】
能變
능변
人物自顧陸展鄭,以至僧繇道元一變也。
인물자고육전정,이지승요도원일변야。능히 변하다.
인물은 고개지, 육탐미, 전자건, 정법사로부터, 장승요, 오도원에 이르러 일변했다.
(이들은 모두 엄밀히 인물화가들이고 산수화를 겸하여 그렸던 화가들이다.)* 能變(능변) : 시대에 따라 화풍이 변하는 것.
* 顧愷之 (고개지, 345-406) : 자는 장강(長康), 호는 호두(虎頭), 위진남북조 시대 동진(東晉)의 화가. 관료 문인 가문 출신으로 십대에 출사 하여 62세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직무가 한가로워 서화에 전념할 수 있었고 재능에 막힘이 없었다. 박학하고 재기 있고(才絶 재절), 그림을 잘 그리며(畵絶 화절), 해학을 좋아해(痴絶 치절) 삼절(三絶)이라 불렸다. 특히 인물화에 뛰어났는데 인물의 형상 못지않게 정신을 전하여 그리는 전신사조(傳神寫照)를 중시했다. 유려하고 힘 있는 선묘로 고유의 풍격을 이루었으며, 화론(畵論)으로 『논화論畵』, 『화운대산기畵雲臺山記』등이 전한다.
* 陸探微 (육탐미 420-479) : 위진남북조 시대 송(宋)의 화가. 인물화에 능하여 당대 명사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인물화와 고사도에 뛰어나, 고개지 장승요와 함께 육조시대 삼대가로 불린다. 기운을 끊지 않고 한 번에 한 획으로 그리는 일필화(一筆畵)를 창시했다. 사혁은 『고화품록古畵品錄』에서드물게 육법을 모두 갖추었다 평하며 제1품의 첫 번째 화가로 꼽았다.
* 展子虔 (전자건 531?-604?) : 북조 말에서 隋(수)대에 걸친 과도기에 활동. 도석화, 인물고사도 등 그림에 뛰어나 당화(唐畫)의 시조로 불린다. 1950년대 「유춘도遊春圖」의 발견으로 초기 산수화가로 재평가된다.
* 鄭法士 (정법사) : 정법사는 북조 말에서 隋(수)대에 걸친 과도기에 활동했다. 장승요의 화법을 배워 도석인물화를 잘 그렸고, 특히 호화로운 연회 장면을 잘 그렸다고 전한다.
* 장승요(張僧繇, 6c 초) : 위진남북조 시대, 남조의 양무제(梁武帝, 502-549)가 중용한 불화 창작자로. 양 무제가 건립한 많은 불교 사원의 회화 장식을 도맡아 고대 사원 장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인물은 겨우 한 두 개의 붓질로(筆纔一二) 형상을 이루며 장가양(張家樣)이라는 독특한 풍격을 이루었다. 『역대명화기 歷代名畫記』에서 장언원은 장승요가 수나라 조정에서 탁월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했는데, 이는 장승요에서 그 아들들로 이어진 화풍이 수대까지 대단한 영향을 끼쳤음을 의미한다. 고개지 육탐미와 함께 육조시대 삼대가로 불린다.
* 吳道元(오도원, 680-759) : 오도자를 말한다. 민간 화공으로 불교사원의 벽화를 그리며 명성을 얻었는데, 당 현종이 발탁하여 관직에 올라 황제 주변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인물을 잘 그려 화성(畵聖)이라 칭송받았고, 이에 현종이 도현(道玄)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여 오도현(吳道玄)으로 개명했다. 장안과 낙양 일대의 사원에 3백 폭이 넘는 벽화를 그렸고, 벽화로 제작한 산수화도 다수 있었으나 당무종의 폐불 정책(9c)으로 모두 유실되어 기록으로 전할 뿐이다. 일부 백묘 모본이 전하고 있어 그의 화풍을 유추할 수 있다.
山水則大小李一變也。荊關董巨又一變也。李成范寬一變也。劉李馬夏又一變也。大痴黃鶴又一變也。
산수즉대소이일변야。형관동거우일변야。이성범관이변야。유이마하우일변야。대치황학우일변야。산수는 대이(이사훈), 소이(이소도)에서 일변했고, 형관동거에서 다시 일변했다. 이성과 범관이 일변했고, 유이마하가 다시 일변했고, 다시 대치도인(황공망)과 황학산초(왕몽)가 일변했다.
* 大小李 : 이사훈(李思訓, 651-716), 이소도(李昭道, 675-758) 부자. 이사훈은 산수화 전공 화가로 청록산수화를 높은 수준까지 발전시켰다. 그 정교함의 극치는 후대에 북종화의 영수로 추앙되는 영예를 안겨준다. 그의 아들 이소도 역시 저명한 화가로 부자가 산수화 쌍벽을 이루며 대이장군(大李將軍), 소이장군(小李將軍)이라 불린다. 또 다른 별칭으로 이장군(二李將), 2이(二李), 대소이장군(大小李將軍), 대소이(大小李) 등이 있다.
* 荊關董巨(형관동거) : 형호荊浩, 관동關同, 동원董源, 거연巨然. 오대(五代, 907-960)에서 북송(北宋, 960-1127) 초기까지 예술의 성과를 대표하는 네 사람을 이르는 말. 만당 시기(836-907)의 산수 회화 발전은 오대 시기 화가들에게 이어져 사실적인 묘사 능력을 향상했다. 이를 바탕으로 산수화는 북방의 험준한 산과 강남의 수려한 풍광의 뚜렷한 특징을 구분하여 발전하게 된다. 형호와 관동은 웅건하고 험준한 북방 산수 화풍을 대표하고, 동원과 거연은 서정적인 남방 산수를 대표한다.
* 李成 (이성, 916-967) : 자는 함희(咸熙). 사대부 가문 출신으로 경서와 사서를 섭렵하고 거문고와 바둑을 즐겼다. 성품이 호탕하고 시와 술을 좋아했는데 오대 송초 불안한 정국에 펼치지 못한 흉중의 포부를 시화로 표현했다. 고도의 담묵법으로 심오한 원근감을 터득하는 한편, 나무를 표현하는데 한림해조묘법(寒林蟹爪描法)을 창시했다. 북송의 고관대작들은 그의 그림을 경전 대하듯 귀하게 여기며 애호했는데, 북송대의 고금제일(古今第一)로 여겨졌다.
* 范寬 (범관, 967?-1027?) : 자(字)는 중립(仲立). 북송 초기의 산수화가로 성품이 대범하고 너그러워 사람들이 범관이라 불렀다. 처음에는 형호와 이성을 배웠으나 '사람에게 배우는 것은 대상에서 배우는 것만 못하고 대상에서 배우는 것은 마음에서 배우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여 산 전체를 통찰하는 화풍을 이루었다.
* 劉李馬夏(유이마하) : 유송년(劉松年, ?-?), 이당(李唐, 1066-1150), 마원(馬遠, 1140?-1225?), 하규(夏珪, 1195-1224) 네 사람. 남송 화원 출신의 남송 4가로 필선이 노련하고 대범하여 창경한 수묵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송이 멸망하고 남송에서는 동시대 화가 중에서도 산수에 탁월한 성취를 이룬 이당의 그림을 모범으로 삼았다. 특히 유송년, 마원, 하규가 뛰어났으므로 유이마하(劉李馬夏)라 했다.
* 大痴道人(대치도인, 1269-1354) : 황공망(黃公望)을 말함. 자(字)는 자구(子久), 호는 대치도인(大癡道人), 일봉도인(一峰道人) 등. 조맹부를 만나 50이 넘어 그림을 배웠고 동원과 거연을 배워 원말 사대가가 되었다. 도교를 신봉하여 부춘산에 은거했고, 79세에 그린 「부춘산거도권 富春山居圖卷」은 중국 산수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저서로 『사산수결寫山水訣』, 『대치산인집 大癡山人集』 등이 있다.
* 黃鶴山樵(황학산초, 1308-1385) : 왕몽(王蒙)을 말함. 자는 숙명(叔明), 호는 황학산초(黃鶴山樵), 향광거사(香光居士). 저장성 오흥 사람. 조맹부의 외손자. 원말 각지의 농민기의로 관리와 대지주가 살육되는 난세에 관직을 버리고 황학산(黃鶴山)에 은거했다. 입산 중에도 많은 이들과 교류했으며 난이 평정된 이후에 산을 내려와 다시 관리가 되었다. 이후로도 입산과 하산을 반복하며 입신과 실리를 번민하던 왕몽에게 예찬은 벼슬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말한다. 예찬은 그의 재능을 아껴 진지하게 은거할 것을 여러 번 권했지만, 왕몽은 결국 정치 외곽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옥중에서 사망한다.
鹿柴氏曰趙子昂居元代,而猶守宋規,沈啓南本明人,而儼然元畫。
녹시씨왈조자앙거원대,이유수송규,심계남본명인,이엄연원화。녹시씨가 말하기를
조자앙(조맹부)은 원대에 살면서도 송의 법규를 지켰고,
심계남은 본디 명나라 사람이면서도 마치 원의 그림과 같았다.* 鹿柴氏(녹시씨) : 왕개(王槪, 1662~1722)의 별호, 청초 화가. 자는 안절安節(굴곡 없이 편안함), 호는 녹시柴鹿, 청재당靑在堂
*趙子昂(조자앙, 1254~1322) : 조맹부(趙孟頫)를 말함. 자는 자앙(子昂), 호는 송설(松雪), 송설도인(松雪道人), 별호(別號)는 구파(鷗波), 수정궁도인(水精宮道人) 등. 저장성 오흥(吳興, 지금의 저장성 호주) 사람. 송왕조의 종실이었으나 원 황실의 관직을 받아 내적인 갈등과 번민이 있었다. 문학,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시(詩), 서(書), 화(畵), 인(印)에 모두 능함. 그림 제작에 서예를 끌어들이고 고의(古意)를 중시했다.
* 而 : 말이을 이 / ~하면서 ~하고도(순접) / 그러나, 그런데도
* 沈啓南(심계남,1427~1509) : 심주(沈周)를 말함. 명나라 문인화가. 자는 계남(啓南), 호는 석전(石田), 백석옹(白石翁), 옥전생(玉田生), 유죽거주인(有竹居主人) 등. 대대로 서화를 애호하는 가문 출신으로 자신도 시서화에 능했다. 평생 벼슬하지 않고 당인(唐寅, 1470-1524), 문징명(文徵明, 1470-1559), 구영(仇英, 1494?-1552)과 함께 명사대가가 되었다.
唐王洽若預知有米氏父子,而潑墨之關鑰先開,王摩詰若逆料有𤣩蒙,而渲澹之衣缽早具。
당왕흡약예지유미씨부자,이발묵지관약선개,왕마힐약역요유왕몽,이선담지의발조구。당의 왕흡은 미씨부자가 있음을 예지한 듯, 발묵의 빗장과 열쇄를 먼저 열었고,
왕마힐은 왕몽이 있음을 예측한 듯, 선담의 의발을 서둘러 갖추었다.* 王洽(왕흡, 8c 중후반) : 발묵법으로 산수를 잘 그려 왕묵(王墨)이라 불렸다.
* 米氏父子(미씨부자) : 미불(米芾 1051-1107), 미우인(米友仁 1072-1151). 무인 관료 지주 가문으로 아버지를 대미(大米), 아들을 소미(小米)라 불렀다. 수묵의 미점(米點)으로 강남의 낭만적 정취를 담아낸 미씨운산(米氏雲山)을 완성하고 수묵산수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 關鑰(관약) : 빗장과 열쇄
* 逆料(역요) : 예측하다. 예견하다. 예상하다.
* 王摩詰 (왕마힐, 699-761) : 왕유(王維)를 말함. 唐 시인, 음악가, 화가, 화론가, 자는 마힐(摩詰), 상서우승(尚書右丞)의 벼슬을 하여 왕우승이라 불린다. 그의 시와 그림에는 선종사상이 두루 영향을 미쳤는데, 중국 문학에서는 왕유는 시선(詩仙) 이백, 시성(詩聖) 두보와 함께 시불(詩佛)이라 불리며 3대 거장으로 추앙되었다. 회화에서는 시정이 깃든 발묵과 파묵으로 남종 문인화의 시조로 꼽힌다.
* 渲澹(선담) : 바림 선, 맑을 담. 엷은 먹으로 겹쳐 칠하는 기법.
* 衣缽(의발) : 스승이 제자에게 전수하는 가사와 바리때. / 전수받은 사상, 학술, 기능 등을 말함. / 秘要(비요, 비밀스럽게 간직해 둔 요지.)
或創於前,或守於後。
혹창어전,혹수어후。혹자는 앞에서 (변화를)시작하고, 혹자는 뒤에서 (그 변화를)지킨다.
或前人恐後人之不善變,而先自變焉,或後人更恐後人之不能善守前人,而堅自守焉。
혹전인공후인지불선변,이선자변언,혹후인갱공후인지불능선수전인,이성자수언。어떤 전대 사람은 후대 사람이 잘 변화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미리 스스로 변화하고, 어떤 후대 사람은 (자신의) 후대인이 능히 전대 사람의 변화를 잘 지키지 못할 것을 더욱 두려워하여, 굳게 스스로 지킨다.
然變者有膽,不變者亦有識。
연변자유담,불변자역유식。그러니 변화한 자는 담대하고, 변화하지 못한 자(지킨 자)도 식견이 있다고 하겠다.
반응형
【참고도서】
「介子園畵譜全集」,대만문화도서공사,1979
이원섭, 홍석창 역, 「完譯介子園畵傳」,능성출판사,1997
장언원 외 지음, 김기주 역, 「중국화론선집」, 미술문화, 2007
이림찬, 장인용 역, 「중국미술사」, 다비치, 2017
【사진출처】
http://gmzm.org/gudaizihua/jieziyuan/index.asp?page=27
https://www.dpm.org.cn/collection/paint/234597.html
https://painting.npm.gov.tw/SearchP.aspx
https://theme.npm.edu.tw/exh110/HiddenGems/ch/page-2.html#main
https://www.clevelandart.org/art/2004.1.46
https://www.wikiart.org/zh/li-cheng/du-bei-ke-shi-tu-0
https://www.zhixingshuyuan.co.nz/%E6%B0%B4%E6%99%95%E5%A2%A8%E7%AB%A0/202102/
728x90반응형'개자원화보 芥子園畵譜 > 본문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명 釋名 - 청재당화학천설 靑在堂畫學淺說 (0) 2022.03.21 계준 計皴 - 청재당화학천설 靑在堂畫學淺說 (0) 2022.03.17 성가 成家 - 청재당화학천설 靑在堂畫學淺說 (0) 2022.02.15 중품 重品 - 청재당화학천설 靑在堂畫學淺說 (0) 2022.02.13 분종 分宗 - 청재당화학천설 靑在堂畫學淺說 (0) 2020.09.23